[스크랩] Surrender(내맡김) - 2002, 2005 강연 中

2015. 9. 7. 16:16데이비드 호킨스

 

지금 내맡기는(To let go) 모든 기회들은 다가올 최후의 시험(ultimate test)을 위해 당신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포기선언(Renunciation)'은 자신 안에서 소중히 간직해 왔던 위치성들이나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들, 소유, 입장, 명성이나 명예, 그리고 나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단물들을 기꺼이 내려놓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낮은 단계의 의식수준을 초월하기 위해 우리는 정직해져야만 합니다. 자신이 집착 하는 위치성들을 포기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증오하고 슬픔에 빠지는 대신, 이것들이 일어나는 대로 즉시 내맡겨버려야만 합니다. 내맡기십시오. 왜냐구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어떤 것이든지 내맡길 수 있는 능력(Capacity)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능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 Way of the Heart, 2002 Sep)

 

 

"And then what?"(그 다음엔 뭐?)게임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게임의 스토리 안에서 "만일 직장을 얻지 못하면, 파산하고 말꺼야... 그러면 집세를 낼 수가 없지... 그 다음엔 뭐? 그러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잃고 말꺼야... 그 다음엔 뭐? 그러면 이사를 가야지.. 그 다음엔 뭐? 그러면 차에  모든 것들을 싣고 다녀야만 해... 그 다음엔 뭐? 내 자신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꺼야... 그 다음엔 뭐? 그러면 다시는 새 직장을 얻지 못 할꺼야... 그 다음엔 뭐? 그러면 굶주림이나 그밖에 무방비 상태로 죽게 되겠지... 그리고 그 다음엔 뭐?...

(우리의 생명은 소멸될 수 없으나) 지금 이것이 죽을 수 없는 당신이 태어난 이후로 질문의 관심사가 있는 곳입니다.   

 

포기선언(Renunciation)은 세상을 등지고 떠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에고가 취하는 단물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요점을 찾으세요. 그것을 찾으면 전체적인 것이  풀립니다. 에고의 급소는 위치성들로부터 얻는 단물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곳은 오직 하나입니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에고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아메바를 알아야 합니다. 아메바는 항상 얻기를 원하지요. 비선형적인 것은 선형적인 세계에서 조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고입니다.  체크를 해보는 것이죠 : 이것이 좋은 미분자인가?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일종의 정보화 처리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기 이전에 그것을 먼저 체크해보는 것이죠. 우리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과연 에고에 관한 것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자(experiencer)입니다. 오직 경험되어 지고 있는 문제들은 사실상 단물(juice)조차도 아닙니다. 단물의 경험인 것이죠. 그러므로 10000가지나 넘는 것들을 내맡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내맡김을 요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일 뿐이니까요. 저는 에고가 마침내 자신의 주권을 양도하게 된 순간을 명백히 기억합니다. 에고의 단물(Ego's juice)은 당신이 삶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존재의 경험(the experience of being)으로서 삶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에고는 자신 특유의 그것을 내맡길 수가 없습니다.

 

경험자(The experiencer)는 양(Yang )입니다. 참나(The self)는 음(Yin )입니다. 내가 나의 삶의 근원이라는 앎(knowingness)은 습득되어지는 것(acquisition)이 아닌 내맡김과 같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삶 자체(life itself)를 내맡기는 것은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생명(Life)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내맡길 수 있는 것은 오직 환상과 같은 것들입니다.

 

(Intention, 2005, 16, April)

 

의식의 상위 수준에서는 어떤 종류의 영적 오류든 고통을 유발합니다. 어떤 것들이 집단 무의식과 같이 올라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진실의 왜곡에 대한 분노와도 같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후 이 모든 것들이 정리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요. 우리는 집단적으로 상속된 어떤 것을 책임지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합니다. 기도로서 당신은 만일 당신이 진실을 위한 전사(warrior for truth)라면, 그들을 틀리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들의 실수 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게 되기를 자각하게 됩니다. 그들을 틀리게 만드는 대신에, 그들의 권리에 관대함이 더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오류가 보여지기를 기도하게 되지요. (Pray to be shown errors) "진실과 정렬되지 않은 것들을 자각 할 수 있게 하소서"(Bring forth to my awareness that which is not aligned with Truth)

 

특정 수준들에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혐오(aversion)나 매력(attraction)과 같은 이원성입니다. 모든 상황들이 대가를 요합니다. 당신은 옳고자 하는 것의 쾌락을 포기해야만 하지요. 그러나 겸손과 내맡김으로 당신은 이원성 너머의 세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자신을 진화시키는 만큼 다른 이들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합된 의도로서, 우리 자신이 되어 온 가치(virtue)로서 우리는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모든 배들이 이와 함께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Vision 26, Feb, 2005)

 

(내맡김에 관한 질문과 답변)

 

질문 : 제 자신이 성장 중인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지금은 모든 것들이 안 좋아져지는 것 같습니다.

답변 : 당신이 성장해서 당신의 카르마 너머로 올라서게 되면 다른 부정적인 카르마가 당신을 따라잡습니다. 당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다른 위치성들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카르마와 행복해 보이는 모든 것들 위에서 떠다니고 있고 모든 것들이 올라오는 것이죠. 당신은 결국 그것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질문 :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상처받기 쉽고 쓰라린 느낌(feeling tender and raw)입니다. 왜 그런 것이죠?

답변 : 힘겨울 정도로 당신이 고통으로부터 취하는 단물을 내맡겨야만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고통스럽다거나 유쾌하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숨을 내쉴 수 있다는 것이 기쁜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어떤 무의식적 죄책감이 신념체계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네요.

 

질문 : 저는 매일 "그래서 어쨌다구"(So what)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알콜중독자인 제 남편에게 당신이 무언가를 하기 않는다면 제가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AA 알콜중독자 모임에 갔습니다. 한 주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요, 그리고 그는 저에게 자신이 사실은 게이였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구? 저는 말했지요. 사실 지금 저는 집에 가기가 두렵습니다. 그와 이혼하려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와 헤어진 후 언젠가는 그와 함께 한 세월에 감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혼란스러워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다음은 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네요.

답변 : 괜찮습니다.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평정을 유지하세요. 당신은 새처럼 자유롭습니다.  그냥 그렇게 계속 해나가세요 다음 상황이 오게 되면 그냥 say hello하면 됩니다. 다음 상황이 기대되는군요. 어쩌면 앞으로 당신은 매 강연마다 참석해야만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질문 : 내맡기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균형을 잃은 듯한 것 같습니다.(I seem to have lost the use of my right side) 그것이 어떤 것인지요? 

답변 : 내맡김은 의지를 요합니다. 모든 영적인 작업들이 의지의 뒷받침에 초점을 둡니다. 그것은 결단력과 의지, 통제하려 함의 내맡김입니다. 에고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연약합니다. 에고의 의지는 당신의 개인적 의식수준과 정확히 비례하지요. 그러나 대문자 W로서 의지는 신의 의지입니다. 당신이 850대 수준의 신의 의지에 내맡긴다면, 개인적인 의지는 거기에 필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지켜보게 되지요. 개인적인 의지의 작용은 고의적임(willfulness)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어떤 영적인 것을 원한다 하더라도요. 깨달음을 구하는 자가 과연 누구입니까? 그것은 에고인 것이죠. 신성의 의지에 모든 것을 내맡길 때, 어떤 것이 일어나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오 주여 제 자신을 당신과 정렬시킵니다. 저는 당신의 종이 되어 신성의 잠재성을 이행하게 되기를 빕니다.

 

질문 : 걱정이 계속됩니다.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답변 : 걱정한다는 것은 기꺼이 내맡기려 하지 않음입니다. 걱정은 만일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계속 고집한다면 결과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지요. 한 가지 쉬운 방법은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그것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저항하는 바를 계속 추구합니다. 때로 그것은 해소되어야만 하는 카르마적 장애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작업을 할 때 그것은 사라지지요.

질문 : 좀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 빨리 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세요. 당신의 문제는 걱정을 충분히 제대로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Your problem is, you're not worrying hard enouhg)저는 당신이 진심으로 더 걱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이 선택하는 것 그리고 저항하려고 지속하는 것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16, April, 2005, 26, Feb, 2005 Lecture 질문과 답변 )

 

 

 

출처 : 파워 대 포스 Study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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