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0. 10:20ㆍ김성용 프란치스코 신부님
광주민주항쟁에 휘말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이상 복역하고 출소하신 김성용 신부님이 재속프란치스코 회원이시란다. 75주년 기념사업으로 선배 프란치스칸들의 삶을 정리하는 일에 힘을 보태기로 해서 자료를 받았다. 그 중에 신부님이 광주신학대학에서 강의하신 원고를 읽으며 크게 감동했다. 정말 위대하고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간접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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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체험- 김성용 프란치스코 신부
여러분이 불러 주셔서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한 김성용 신부입니다. 기도로 시작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당신 사랑 때문에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 모습 따라 기묘이 만드셨으며, 당신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처음부터 오만했고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해 왔으며 이러한 어리석음이 5년전 이곳 아름다운 빛고을에서도 저질러졌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오늘, 당신은 이 죄인을 불러 주시고 그 당시의 일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장차 이 교회를 이끌어 갈 사랑스런 신학생들에게 주어진 소명을 생각할 수 있도록 이 시간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자리에,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저의 생각이나 말을 듣는 우리 신학생들의 마음 속에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하시어 앞으로 자신들의 갈 길을 똑바로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사실 여기에 오면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부끄러움 때문에, 그러면서 죄인의 심정으로 여러분의 부르심에 겸허한 마음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의 부탁을 받고 제 말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습니다. 그 당시에 한 모든 일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성령께서 역사하셨기에 지금 이 시간마저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리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준비없음을 책망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너무도 강한 체험이기에 성령께 맡기고자 합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요점은 이 못난이를 축복해 주시고 광주사태의 진상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도록 해주신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고자 하느 것입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희생이 거룩한 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증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작년 10월11일 광주사태 희생자 합동 추모 예배가 있었는데, 그때 위촉받고 했던 저의 강론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동족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거나 희생된 故 이성학 장로와 박관현군, 그리고 기종도씨의 명복을 빌며 회개해야 할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는 엄숙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제 밤 TV를 통해 아웅산 폭파 대량학살 사건의 현장을 보면서 누구나 입달린 사람이라면 천인공노할 북한의 만행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4년 전 이 거룩한 곳 광주에서 일어났던 천인공노할 만행의 현장도 보도될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그것이 5년 후가 될 지, 10년 후가 될지, 아니면 한 세대가 지난 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살인은 인간이 저지르지만 역사는 하느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밤, 밤을 지새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천인공노할 사건을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이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는 멸망하는 길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같은 핏줄을 나눈 혈육끼리 살인한 인류의 역사는 멀리 아담의 자식에게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할 카인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동생을 돌로 무참하게 살해하고, 무죄한 동생의 피로 땅을 적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자신도 동생처럼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카인에게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특별한 표지를 주셨습니다. 참으로 우둔한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주관은 하느님께만 있으니, 바로 그 신비를 하느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격려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사실 인간은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살인자들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피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죽음은 예수님의 성혈과 함께 인간 구원의 거룩한 제물로 바쳐지고 악인들의 죽음은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죄의 벌로 멸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고인들의 죽음도 하느님께서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제물로 받아들여 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신 형제 여러분, 거룩한 희생제물로 고인들을 받아들이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피도 원하신다면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여 고인들에게 위로의 선물로 드립시다. 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태오 복음 5장의 말씀으로 끝맺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시오. 아멘”
이와같은 강론을 한 일이 있는데, 이 강론 내용 안에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깊은 신비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읽어 드렸습니다. 대체적으로 제 말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까 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비스럽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느님께 온 몸으로 투신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요, 우리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우리를 써주시라는 우리의 기도로 제 이야기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섭리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사건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비극일지라도 역사하시는 하느님 편에서 바라본다면 결코 비극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광주시민 의거! “제가 이 사건 안에 깊이 휘말려 들어갔었다“라는 표현은, 제가 용기가 있어서 한 것도 아니고, 도무지 잘난 것이나, 또 무슨 특별한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머저리같은 신부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 사건 안에 깊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고난을 형제들과 같이 받으면서 제가 체험한 바는, 이 땅에 뿌려진 씨는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값진 피였다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국적인 젊은이들이었고 시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죄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흠이 없어야지요. 그들이 죄인이었다면 죄의 벌로 죽은 것이지요. 그러나 죄없이 죽음을 당했기에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십자가에 예수님, 그 제물의 피를 합치는 참으로 숭고한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그들의 제물은 하느님이 원하시고 또 기꺼이 받아주시고, 또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을 떠나서 생각할 때 참으로 부끄럽고 비참한 살육작전이었지만, 그러나 하느님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며 이 땅의 민족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이 충격을 주시고,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 왜 이래야 하는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종말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문제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오늘날 우주과학이 발달하고 급진적으로 세상이 바뀌어여 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것도 문명의 혜택을 받아서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일해지고, 과학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물질만능주의, 인간본위라는 오만함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오류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무서운 충격을 주시면서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신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저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가운데는, 제 이름이 많이 알려졌기에 적어도 대단한 신부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 것이 아닙니다. 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신학교에 들어가게 될 때에도 기적적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점이나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겨우 커트라인에서 올라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일반대학에 다니다가 약 3년간 쉬었거든요. 몸이 아파서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당에서, 20일전에 시험 한 번 치러봐라 하는 권고에 시험을 치뤘는데, 20일 동안 준비해서 무슨 좋은 점수를 딸 수 있겠습니까? 또 제 부끄러운 치부를 고백한다면, 학교를 참 많이 다녔지만 한번도 우등상장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어떤지 아실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염병을 앓고 또 이쪽 오른 눈을 실명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병신입니다. 한 눈 가지고 사는, 얼른보면 멀쩡한데 유심히 보면 “저 신부가 병신이구나”를 얼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눈을 낫기 위해서 20년간 갖가지 치료를 했습니다. 별 짓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약해졌죠. 세상을 비관하기도 했고 중학교 시절엔 자살할 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했습니다.
하느님께 귀의한 것은 고3 때였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연륜도 뿌리가 깊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처럼 저는 집목된 인간입니다. 제가 사제로서 서품된 후에 이미 고인이 되신 학장 신부님인 황 주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는 다름 사람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할 거야!” 제 가장 아픈 데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접목된 신자고, 신부입니다. 태중교우로서 부모님의 사랑과 신앙 속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또 소신학교를 거쳐서 온갖 정성으로 사제직에 오른 동료들과 비교할 때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뿌리없는 신부였습니다. 항상 미열에 시달리고, 한 눈으로 살아야 하니까 책도 마음대로 충분히 볼 수 없어서 신학교 시절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동료들이 두시간 공부하면 저는 한시간도 공부를 못하니까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동료신부들과 비교한다면 겨우겨우 턱걸이로 신부가 된 것입니다. ‘학장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 말씀은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는 공것으로 신부가 되었습니다’ 라는 고백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항상 병약했고 신부가 되어서도 비실비실했습니다. 특히 광주 남동 주임신부였을 때도 수많은 사람에 시달려 항상 피곤했었지요. 혼자 있으면 언제나 땅바닥에 등을 기대고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고 거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들, 종교인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갈 곳이 없으니까 남동 성당에 찾아온 것이지요. 이런 분들이 계속 찾아오니까 저는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려든 것입니다. 저 자신은 피곤하니까 그 사람들이 안 와주었으면 했습니다. 빨리 수습되어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귀찮은 이 몸뚱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 속으로 정말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대로 놔두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래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필립보 부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필립보 부제를 이디오피아 재상이 타고 가는 수레 옆에 데려다 놓은 이야기, 감히, 거기에 비교하기에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예를들면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무슨 의식이나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또한 강한 소명감이 있어서 그곳에 뛰어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를 하느님이 당신의 도구로 삼아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왜 하필이면 못난 김 신부를 택하셨을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광주교구에는 많은 젊은 신부님이 계시고, 용기있는 신부님도 계시고, 박사신부님도 많이 계시죠. 그런데 왜 찌꺼기같은 이 못난 신부를 사용하셨을까?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를 고르실 때 학자들이나 훌륭한 사람들을 제쳐두고, 어부를, 배우지 못한사람들을 택하셨죠. 아마 이것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됩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위대하고, 인간의 생각보다 얼마나 높으신지, 당신의 영광을 더욱더 드러내기 위해서 이 못난 신부를 택하셨음을 차차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괴로워했고 어려움 속에서 빠져 나가고 싶었습니다. 모르는 체 하시는 하느님께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법이긴 하지만, 저는 개법이라고 말합니다. 재판은 재판이지요. 군재판은 진정 개판이지요. 원심에서 15년 미판결을 받고 독방에 들어가 지내는 동안 차차 조금씩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무죄한 자니까 무죄한 자로 석방되리라는 인간적인 욕망도 품었습니다. 그리고 소식 중에 온 교회가 이 못난 신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못났기 때문에 도구로 써 주신다는 것을 점차로 마음 속에 느낄수록 기쁨까지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법판결이 날 때까지 끊임없이 인간적인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한국 주교회의 의장이신 윤공희 대주교님께 계속 보고를 드렸고 그분의 이름으로 교구 사제단의 한사람으로 봉직했으니까 그분이 나를 구해주시겠지, 또 김수환 추기경님께도 탈출해서 모든 것을 보고해 드렸으니까 살려주시겠지, 또 81년도에는 현 교황님이 일본오셨을 때 “김 신부를 내놓아라” 라는 말씀을 해주시겠지 하는 기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사제단이나 수도자나 교우들이 기도회를 하고 있으니 귀찮아서라도 나를 내주겠지. 81년도 부활 때에는 틀림없이 부활미사를 드릴 수 있으리라고 혹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주교구 신부들이 가는 아죠르나멘또에도 참석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4월 대법원에서 기각되었습니다. 그때에 부활이 지나고 교구신부들은 아죠르나멘또로 떠났고, 신학교에 계신 신부님들이 봉성체를 하러 오셨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진정 부끄럽습니다. 본당 수녀님과 두 분 신부님이 오셨었는데, 그 수녀님은 저를 보면서 피정의 은혜를 받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난 그 수녀님 앞에서 눈물, 콧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그때 내 모습은 정말 볼품이 없었습니다. 입술을 깨물면서 참으려 했지만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수녀님이 수건과 휴지를 주었지만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감방에 끌려가면서도 눈물이 계속 흐르고 밤이고 낮이고 닷새동안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아집 속에 있었기에, 인간적인 희망 속에 있었기에, 하느님이 모든 것을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사제로 서품될 때 하느님께 모든 것을 투신하기 위해서 한발짝 다가간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인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마치 유다스처럼 내것을 챙기기 시작했었지요. 하느님께 바쳤다면, 그분을 믿고 그분께 맡겼어야지요. 그렇게 못했습니다. 신부인 주제에 그것 하나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를게 무엇입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 제게 특별한 축복을 주셔서 제 안에 있는 이러한 인간적인 기대와 희망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그 아픔이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는 만큼 마음 속에는 안정과 기쁨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쁨,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은 기쁨이 점점 차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인 찌꺼기가 눈물과 콧물로 빠져나가니까 하느님의 은혜가 찼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찌꺼기가 빠졌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부터 약 4개월 동안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뵈올 수 있는 사막이었습니다. 그것이 교도소 독방입니다.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곳에는 독방도 있고 합방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방에 들어가지요. 독방에 들어간 사람이 몇 안됩니다. 난 그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마치 번개와 같았습니다. 얼마나 빨리 지났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는 물론 행복했었습니다. 머리가 커서 들어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규칙을 스스로 달게 지켰고 또한 행복과 평화를 누렸습니다. 눈치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양심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방학이 가까왔으면 하는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방생활은 제가 출감할 날짜가 가까와 올수록 안타까왔습니다. 이 행복감에서 나오기가 싫어도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8월15일에 나가게 되리라는 것을 4월말경에 미리 알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같습니다.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습니다. 그 독방생활은 기쁨의 생활이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는 그런 시절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마 틀림없을 것이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사막이 있고, 그 사막에서 하느님을 뵙고 기쁨과 평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출감한 후에 교구 신부님과 처음 대면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제 말을 들으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찍힌 사진이 지금도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했거든요. “나는 하느님께 너무나 특별한 은혜를 혼자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료 사제들에게 미안합니다. 이 체험을 여러분과 나누지 못하고 혼자 받아서 미안합니다.” 라고요. 참으로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음 누구 이 은혜를 받으실 분 기쁘게 받으십시오.
앞으로도 젊은 신부님들이 이처럼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는 조그마한 별장같은 성당에서 멋지게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 겨울에는 공기총으로 꿩을 96마리나 잡았습니다. 꼭 꿩을 잡으려 한 것은 아니고 제 건강을 관리하겠다는 핑계입니다. 언젠가 또 이 못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해지면 사목을 좀더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못된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어리석었습니다. 하느님은 병약하고 보잘 것 없는 상태에서 당신 도구로 훌륭하게 쓰셨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놀라게 되었는데 만일 훌륭했더라면, “저 신부같으면 하고도 남을 거야” 그러나 항상 병약하고 못난 제가 했기에 “저 신부가 그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다른 교구 신부들을 어쩌다 만나면 부끄러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참 고생 많았지, 김 신부는 정말 위대해, 우리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냐. 원 세상에 잠깐사이 그토록 유명해지고...(일동 웃음) 이런 말을 들 때마다 저는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거든요. 감히 말하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교도소 안에서 아마 평생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을 겁니다. 성경에는 코멘트가 필요없었습니다. 그냥 읽었을 때 그 깊은 뜻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교도소 안에서 성경 공부를 많이 했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옛날에 저는 성무일도서를 바치면서도 앵무새처럼 했었죠. 신학교 철학과 때부터, 일년 별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라틴말을 읽으니 무슨 뜻인지 알고 합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는 성경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그리도 적절하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을까 하며 감동했었습니다. 또 그 소용돌이 속에서 체험한 모든 것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느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깊게 체험된 것입니다. 예를들면 ‘쁘레빠쇼‘(마태10,26)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 하지말라.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죽일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이죠. 사실 전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도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다 일러주실 것이라며 예수님이 이미 약속했었고, 이 약속이 저의 생활 안에서도 실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계속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 김 신부도 얼쩡하다 유명해졌다고, 나도 신학교 생활 그렇게 할까라는 생각은 똘레 당하기 좋은 생각입니다. (일동 웃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당신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불러주시고 그에게 소명을 주시면서 충실히 소명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편안한 것은 일반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시련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면 우리는 불평을 합니다. ‘하느님은 어찌하여 나에게만 끊임없이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원망하며 투덜댑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특별한 은혜, 즉 카리스마라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특별한 모양으로 내려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 들을 때 우리는 평화롭고, 기쁨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못알아 들을 때 불평하고 또 그 아픔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체험한 바를 여러분과 나누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불평을 하면서 살았거든요.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예언자들, 그들의 생애가 얼마나 어둡고 비참했습니까? 그러나 그분들은 특별한 소명을 받고 특별한 은혜 가운데 행복 속에서 산 자들입니다. 바로 그 점을 저는 저의 삶을 통해 뼈속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이는 말장난도 아니고 신비과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체험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솔직히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에서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춤을 추어라.“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비난 당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모욕 당하면 못참습니다. 그것은 교만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이 학교 옆집, 보안대 지하실에서 졸병들이 옷 벗으라고 명령할 때 벗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졸병이 명령했기에 따랐습니다. 만일 웃사람이 와서 명령했다면 옷을 벗지 않았을 것입니다. 웃사람에게 왜그러냐고 대들었을 겁니다. 빤스 하나 차고 있는 김 신부의 모습을 여러분이 보셨다면 자다가도 웃을 것입니다. 그때 저 자신이 처음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신부이기에 대단하게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하실에서 초라한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졸병이 옷벗으라는 명령에 옷을 벗어야 하는 그 모습이 김성룡 신부입니다. 우리의 스승이며 주님이신 그분도 빤스 하나 차고 십자기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빤스 하나 찬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저 자신을 바라볼 때 그것이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시는 우쭐대지 말아야지‘ ’교만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 속에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어찌 제가 한 것처럼 거짓을 말할 수 있으며, 하느님이 차지하실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영광을 감히 제가 도둑질할 수 있겠습니까! 빤스 하나 찬 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구원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신비를 저는 체험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끊어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캐딜락을 몰고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좋은 길은 같이 갈 수 있겠지만 오솔길에서나, 바위가 많은 산길에서는 캐딜락을 몰고갈 수 없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온갖 시련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며,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병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그 체험을 제가 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말고 진리 안에 진실되이 살아가고, 또한 그 안에서 진실을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자로 불리움을 받은 우리의 소명입니다.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면서 살려면 차라리 죽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의 사제로서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행여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살라치면, 이 시간이 끝나고 학장 신부님께 가셔서 자퇴서를 내십시오. 또한 우리가 진리를 증언할 때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도구인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되이 봉헌한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써 주실 것입니다. 어떤 때든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소화데레사 자서전을 보면 이런 기도가 있죠. ”예수님, 저를 마음대로 쓰십시오. 어린아이가 놀다가 못으로 공을 구멍내든지 발로 차서 구석에 내던지든지 마음대로,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것이 완전한 봉헌입니다. 바다에 우리 몸을 내던지듯이, 하느님께 우리 온 몸을, 나의 전 인격을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것을 확신하고 또 예비신자들에게도 이렇게 설명하고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결단을 내린 사람에게 저는 세례를 줍니다. 시간이 1시간 20분이 지났기에 제 말을 기도로써 마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섭리로 인류 구원을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느님, 오늘도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늘 이처럼 축복받은 자리에 불러 주시고 당신의 놀라우신 신비를 가슴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이 놀라우신 신비를 저희는 가끔가끔 눈치를 채면서도 거의 대부분 불평하고, 어리석은 원망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저희 마음 속 깊이에 특별한 은혜를 주시옵소서. 구원의 신비가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에 달려있음을 깊이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해서는 이제 저희가 십자가에 달려야한다는 신비를 알아듣게 해 주십시오. 보잘것 없는 우리를 당신 구원의 역사하심에 도구로 삼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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