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호박사님 가르침 가운데 내맡김에 관한 글 모음

2012. 9. 8. 01:06교훈이 되는 이야기

헌신을 통해서 개인적인 모든 의지를 놓아 버리세요.
모습을 드러낸 모든 생명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베푼다는 목표에 전념하고,
판단과 심판은 신에게 맡기세요.

<나의눈>

 

 

 

 


사랑과 진실에 헌신하는 삶을 사세요.
나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자신이 동료 인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떠한 변명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체의 생명을 경외하세요.

긍정적인 카르마를 구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만,
가장 높은 카르마는 어떤 대가도 구하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하는 것이 전혀 없고,
필요한 것이 전혀 없는 단계로 이끌어 줍니다.

<2006년 4월 헤야님이 호킨스 박사님을 만나고 쓰신 글 가운데>

 

 

 

 

 

에고는 단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단물을 짜낼수 있고,
에고는 자신의 모든 위치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에고가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에고가 미워하는 걸 즐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에고가 보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에고는 보복하는 걸 즐긴다는 것이지요.
.
.
.
에고가 잔인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 내가 괴로움을 즐긴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아."
아닙니다.
당신이 괴로움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이 괴로움으로부터 얻는 단물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단물로써 가리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시나요?

 

....당신이 에고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대해 정직하다면,
당신은 당신이 당신의 에고를 사랑한다는 것을 봅니다.
당신은 당신이 당신의 에고로부터 얻는 단물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이 진실을 인정하기만하면,
당신은 그것의 가면을 걷어냅니다.
당신은 에고를 사랑합니다.
에고는 당신의 단물의 근원입니다.

에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근본적 정직성입니다.
비이원성의 길은 근본적 진실입니다.
환상들의 환상을 포함한 모든 환상을 놓아버리려는 자발성입니다.

그러므로 탐구해야할 것은
'내가 그 위치성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만족감을 얻는가'입니다.
'나는 부당한 일을 겪는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보상을 제거하는 방법은
먼저 그것에 대해서 솔직해지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무엇무엇을 즐기고 있다.
나는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해서 그 즐거움을 기꺼이 놓아버릴 마음이 있는가?"
당신은 그러한 희생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오로지 그러한 희생을 해 본 사람들의 말을 믿을 도리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고에게는
영광과,명성과, 정당성과 복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의 희생이
정말로 큰 희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에고에 대해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희생입니다.
정당성을 놓는 것은 큰 희생입니다.
부당함을 키우지 않는 것,
증오를 놓는 것은 큰 희생입니다.
이것이 작은 희생인양 하지 마세요.

 

근본적 진실은
모든 것에서 가면을 벗겨내고,
모든 것을 기꺼이 있는 그대로 (what it is) 보고
이제 모든 것을 감정적 정직성의 관점에서 다루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이 육체 속에 다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에고 만족을 위해 진실을 거듭해서 바꾸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번 생에,
그러한 에고 만족은 재고되기 위해 올라옵니다.
이번 생에, 당신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신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은
내가 에고에서 얻어내는 모든 것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가?
사실상, 그 답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경험적으로 당신은 에고 만족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거래가 될 거라고 말할 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 역사에 걸쳐 전 인류가 얻은
모든 쾌락과,
모든 가치와,
감정적 물질적인 모든 획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신의 현존에 비하면 이 모든 것은 티끌과 같습니다.
그 무엇도 신의 현존과 같은 영역에 있지조차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각자는 믿음을 바탕으로 진화했습니다.
그것은 확신에 대한 믿음,
온전성에 대한 믿음,
그것이 누가 됐든 영적 스승이나 구루에 대한 믿음,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교회나 영적 전통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사람의 내적 방향은,
사람을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꽉 잡을 수 있는 것으로 이끌어줍니다.

<근본적 주관성 3부 중 내맡김 가운데 (예전 차사랑님이 올리신 글)>

 

 

 

 


뭔가가 일어날 때 그것을 신에게 내맡기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어나는 일체를 그것이 일어날 때 신에게 맡기려는 의지입니다.
여러분이 뮤지컬음을 들으면 그 음이 올라가면 다시 내려갑니다. 여러분이 듣게 될 때
음은 최고에 이르렀다 싶으면 이미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내맡기세요. 그것은 일체가 일어날 때 일어난 일체의 위치성을 내맡기려는 의지입니다.
어떤 것에도 꼬리표를 달지 않고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위치성을 부여하지 않고 말입니다.
<내맡김의 힘 가운데>

 

 

 

 


마음은 정말이지 '대단한 과즙기'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야기를 짜내려고 노력하는 모든
'대단한 정신 과즙기'를 기꺼이 놓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음보다 신을 더 사랑하는가 아니면 신보다 마음을 더 사랑하는가 두 개중 하나입니다.

더 깊이 나가려는 의지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놓아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날 때, 생각이 물마루가 되기 시작할 때,
그것이 형상을 이루기 시작할 때,
생각을 놓아버리세요.

마음과 그것이 주는 감정적 보상에 집착하는 한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물러날 수 없습니다.

 

 

 

 


저것를 일으키는 이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욕망의 환상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45LuPQUUEAI

 

 

 

 


여러분은 기꺼이 자신의 의지를 신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2004년 12월 세미나 가운데>

출처 : 의식혁명 Study Club
글쓴이 : 나이자다라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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