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잠이 안와서 쓰는 두번 째 이야기.

2014. 11. 18. 03:54교훈이 되는 이야기

사실 첫번째 사망선고는 돌아가신 뒤에 봤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었는데,

 

두번째인 오늘은 임종부터 지켜봐서 뭔가 강한 임팩트가 남네요.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심박이 30에서 70을 오르내리다가...

 

몇번 턱을 움직이시다가..

 

마지막에 심전도가 플랫되면서.....얼굴이 편안해지더군요.

 

제가 잠이 안오는 이유가, 심전도가 플랫되면서 얼굴이 편안해진..그 순간이 계속 기억에 떠오르는 겁니다.

 

직관적으로...그분이 편안하게 가셨음을 ...자유로워지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란게 또 하나의 탄생이며 부활이 아닐까...

 

삶 속에서 죽음이란 언젠가는 오지만 피하고 싶은 것..온갖 두려움의 근원인 것이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고 살기 위해서 산다고 할 때...먹지 않으면 죽고..죽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돈을 잃고 실직하고 노숙자가 되고....최악으론? 결국 죽음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의 구름 켜켜히 에 있는 두려움의 근원인 죽음은..

 

그렇게 심전도가 플랫되는 순간....온갖 삶의 집착을 놓고 훨훨 자유로이 날아가신 환자분처럼...

 

정작 또다른 세상으로의 탄생이 아닐까....

 

 

예전에...

 

고승들의 입적시에 깨달은 스승들의 입적시에 명상가들에게는 가장 큰 공부가 된다고 합니다.

 

스승들의 임종 시에 에고를 완전히 놓아버리면서..의식 수준이 엄청나게 뛰어오른다고 합니다.

 

그때의 의식의 진화가 주변 사람들의 의식에 바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승들이 돌아가실 즈음에는 그 주변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인다고 합니다.

 

 

할어버지는 왜 편안해 하셨을까?

 

할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무엇을 보신 것일까?

 

그분을 누가 데려가신 것일까?

 

죽었을 때만 누가 데려가고 죽음이후에만 그분의 세계의 법칙에 지배받는 것일까?

 

삶 속에서도 우리는 그분의 계획 속에서 사는데 모르는게 아닐까?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죽음은 곧 다른 삶의로의 부활이다...... 저는 천주교인이니...하느님 세상으로의 재탄생이겠지요..

 

그렇다면 삶도 또한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정작 두려운 것은 두려움 감정으로 인해 켜켜히 쌓이는 좌절이나 부정적 신념이 아닐까?

 

지난 십년간 나를 짓눌렀던 두려움..삶에 대한 공포, 우울 불안함은

 

두려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오늘 할아버지의 임종은..

 

나에게 당분간 계속 생각이 날 듯합니다...

 

할아버님의 영혼이 남기고 간 충격...

 

계속 곱씹어봐야겠습니다.

 

 

 

 

오늘의 이 경험만으로도 여기 이곳에서 근무한 값어치를 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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