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킨스

[스크랩] 겸손

ASHA 아샤 2014. 7. 11. 15:31

도중에 일어나는 유혹에서 사람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는 사전경고 외에 겸손함, 감사,

그리고 중요한 것으로,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진실과 진실의 열매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진실의 기원을 존중하게 된다.

온전한 이는 또한 마주칠 수 있는 가능한 함정과 유혹을 존중한다.

따라서 이 존중은 그런 한계에 대한 경각심으로 반영된다. 겸손함은 역설적으로 존중의 한 성질이다.

또한 에고 자체도 존중하는 것이 현명한데, 왜냐하면 장구한 세월 동안 에고의 노력이 없었다면 사람은

에고의 초월을 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남지 조차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내안의 참나를 만나다 155쪽

 

"사람들은 '나는 썩어빠진,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고 자책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썩어빠진 쓸모없는 인간이예요, 그래서요? 무엇에 대해 자신을 용서한다는 거지요?

당신은 나빠요. 끔찍한, 쓸모없는 짓을 했어요, 맞아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나빠도 괜찮아요.

죄의식에 탐닉하지 마세요. 죄의식은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악업이 무엇일까요. 오로지 무지일 뿐입니다.

예수와 부처는 세상이 부정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오로지 무지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악마는 없고 무지가 있을 뿐입니다. 오로지 무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겸손으로 인하여 그러한 무지를 내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박함이나, 욕망으로부터가 아닌 겸손으로 인하여 당신은 무지를 내맡깁니다.

'I, myself, do not know, O Lord주여, 저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한계를, 우리의 알지 못함을 신께 내맡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08년 축도 중에서)

 

 

<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신>을 완전하게 섬기는 일을 제외한 모든 동기를 버리려는 의지가 일어난다.

깨달음이 아닌, <신>의 종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신>의 사랑의 완벽한 통로가 되려면 완벽하게 포기해야 하고,

영적인 자아를 추구한다는 목표를 버려야 한다. 그런 뒤에는 기쁨 자체가 영적인 노력의 기폭제가 된다.

그 과정의 나머지는 기쁨과 겸허한 자세를 통해 저절로 이루어진다.(나의 눈 중에서)

 

출처 : 데이비드 호킨스 - 헌신적 비이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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