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야기 sobieskiego] 냉전 중의 린민메이 어택
먼 미래 인류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거인족 젠트라디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전쟁이 삶의 목표였던 그들은 화교소녀 린민메이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노래를 듣고 전의를 상실한 젠트라디들은 처음에는 이를 음파 무기로 인식했으나 결국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을 이해하게 됩니다. 파괴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들에게 무엇인가 지켜야한 소중한 것이 생긴 것이죠. 바로 文化!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보도르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젠트라디들은 지구인들과 손을 잡고 보도르자를 물리칩니다. 그리고는 지구인과 어울려살아가게 되죠.
노래로 우주에 평화를 가져온, 전설이 된 소녀 린 민메이는 비단 젠트라디들만 홀렸던 것은 아닙니다. 산골에서 마크로스를 시청하던 오타쿠 공보의 한 명의 심금을 울렸죠.
(린민메이 노래 부른 가수 검색해서 얼굴 확인하지 마세요...내 마음 속의 린민메이가 사라져버렸다는...ㅠㅜ)
보쿠노 린 민메이...
이렇게 상대편에게 문화로 충격을 주는 린민메이 어택은 만화 속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북한군에게 소녀시대를 들려주는 것은 린민메이어택과 비슷한 의도와 비슷한 결과를 낳기도 하죠.
오늘의 주제는 냉전 시대있었던 린민메이 어택입니다. 배경은 발트해입니다. 발트해의 북쪽에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있죠? 옛날엔 핀란드와 그 남쪽의 에스토니아까지 모두 스웨덴의 영역이었는데 북방전쟁에서 패배하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러시아 제국이 삼키게 됩니다. 그 때 새로 얻은 영토인 핀란드만 어귀에 지은 도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설 때 폴스카와 핀란드, 발트해 국가들은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2차대전을 거치며 발트해 국가들은 소련에 편입되죠. 그리고 핀란드는 군사적 성공으로 인해 적당한 조건으로 평화 조약을 맺고 독립을 유지합니다.
발트해 3국 중 가장 북쪽의 에스토니아는 헝가리, 핀란드와 함께 우랄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씁니다. 핀란드와 여러모로 가까운 민족이라는 의미겠죠. 발트해 국가들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소련쪽은 에로티시즘에 대해 잘 모르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쿠바 혁명 후 쿠바를 도우러 갔던 소련인들은 현지의 여성의 상품화(?)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합니다. 원래 문화적으로도 그럴 뿐더러 자본주의 지역이 아니기에 그런 쪽으로는 더더욱 발달을 못했죠.
미국의 CIA는 이 점을 노립니다. 보시다시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아주 남쪽에 있죠. 에스토니아와 아주 가깝습니다. CIA는 헬싱키의 TV 방송국의 가시청 영역을 불필요할 정도로 넓게 하도록 핀란드에 요구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티비 수신기를 불법 개조하여 핀란드 TV방송을 몰래 시청하며 자본주의의 맛을 느낍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쇼, 오락 프로, 남녀가 함께 추는 선정적인 춤들, 그리고 신나는 댄스 뮤직...
어린이들은 학교 쉬는 시간에 자본주의 국가의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그리고 애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에스토니아 사람 전부가 TV 속 세상인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죠. 소련 정부는 이를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인식했고 에스토니아 대통령을 호출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자본주의의 춤과 노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학교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들의 그것만큼 인기를 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TV속의 화려한 세상을 꿈꾸던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소련 정부가 선전하는 노동자, 농민 천국은 공허한 거짓말로 들렸습니다. 높은 군비 지출, 그리고 그로 인한 낮은 생활 수준으로 누적된 불만이 소비에트 연방을 무너뜨렸다면 그러한 불만 속에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에스토니아인들의 동경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입니다.